안녕하세요, 저는 최근 넷플릭스로 국내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을 정주행하면서 실제 배경이 되었던 사건과 인물 등이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국내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주인공 유진초이, 배경 글로리호텔을 비롯한 5가지 정보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유진초이와 황기환
미스터션샤인 등장인물 '유진 초이'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유진 초이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은 존재한다. 바로 '황기환'이다. 황기환은 평안군 순천군(현 평안남도 순천시) 출신이며 그의 가족 및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생애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고 한다. 즉 유진 초이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스토리는 드라마 속 허구내용이다. 황기환은 제1차 세계대전에 자진하여 참전하고 미국시민이 되었으며,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 프랑스 파리에 남아있던 중 김규식의 제안을 받고 1919년 주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20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런던위원부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끊임 없이 한국의 상황에 대해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하였다. 한국문제는 한국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한국인은 자유와 자결을 위해 제국주의와 싸우는 중이고, 이천만 한국인의 요구는 절대 독립으로 어떠한 강압도 한국인의 기백을 꺾을 수 없다며 강조하였다. 그는 1923년 심장병으로 사망하여 퀸즈 메스패스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2018년 한국에서 미스터션샤인 드라마가 방영되며 유진 초이의 실존인물인 황기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결국 2019년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로 결정하였다.
2. 무신회와 흑룡회
미스터션샤인 등장인물 '구동매'는 백정의 아들이며 무신회 한성지부장으로 활동한다. 무신회의 모델은 '흑룡회'다. 흑룡회는 1901년 조선에서 활동하던 낭인들이 일본의 대외 침략주의를 위해 조선 및 만주 시베리아 등에서 활동하던 낭인과 규합하여 만든 우익 정치 조직이다. 조선에서 활동하던 일본의 낭인 집단인 천우협 소속의 우치다 료헤이 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이들은 러시아에 대한 개전론을 열렬히 주창하는 한편 조선 병합론을 더욱 발전시켜 이른바 대아시아주의를 제창했다. 대아시아주의는 일본 전통 우익의 대외 사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들은 일본을 축으로 한 대아시아 제국 건설을 지향하고 천황을 기점으로 한 위계적 국제 질서와 가부장적 공동체 사회질서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현양사 낭인들의 후예로 의병학살에 앞장서고 일진회를 조종하여 한일병합을 이끌어낸 우익 단체이며, 조선뿐 아니라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도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고 학살하는 등 작전에 앞장서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파쇼적 침략 운동은 1930년대를 거쳐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파쇼 정책에 편입 되었다.
3. 글로리호텔과 손탁호텔
미스터션샤인에서 온갖 친일파, 친러파, 친미파 등 다양한 돈많은 자들의 모임 장소 배경이 된 '글로리호텔'. 이 글로리호텔 역시 '손탁호텔'이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손탁호텔은 앙트와네트 손탁(1854~1922)라는 프랑스 태생의 독일 여성이 지었다고 한다. 손탁은 1885년 조선에 부임한 러시아공사 웨베르를 따라 처음 조선에 왔다. 그는 영어, 불어, 독일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언어까지 원활하게 구사하여 서울 외교계의 중심이 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는 1897년 미국인 선교사 다니엘 기포드가 살던 곳을 매입하여 2층으로 된 서양식 벽돌건물을 짓고 1902년 10월에 호텔을 오픈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할 때 이토 히로부미가 경운궁(덕수궁)과 가깝다는 이유로 며칠을 머물며 조약 체결에 압박을 가하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손탁 호텔은 예약 손님만 투숙하는 황실의 프라이빗한 호텔로 운영되었으며, 당시 주요 정치인물이나 서울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의 모임 장소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1층은 커피숍 (가배) 및 식당, 일반 객실과 거주공간이 있었고 2층은 귀빈실이 있었다고 한다.
4. 고종의 예치금 증서
고종의 예치금 증서는 미스터션샤인에서 중요한 스토리로 나온다. 고종의 예치금 증서 역시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였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략 되던 때에 고종은 해외로 망명한 근왕 세력과 헐버트, 알렌 과 같은 외국인들을 통해 밀사 외교를 진행했다. 이 때 필요한 자금을 위해 황실 재산의 일부를 홍콩 또는 상하이에 있는 외국계 은행에 예치하였으며 1903년 주한 독일 공사 잘데른 남작이 덕화은행을 경유하여 베를린 할인은행에 예치한 자금도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고종의 비자금은 사라졌는데, 통감부가 1907년에서 1908년까지 고종의 예금 인출 명령서를 위조하여 그 예치금을 전부 인출해버렸던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고종은 1909년 10월 호머 헐버트를 시켜 은행에 맡겼던 예치금을 찾으러 갔다가 은행 측으로부터 이미 예금이 인출되었다는 답변을 듣게 되며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해방 이후 다시 한국에 온 헐버트가 이승만 정부에게 독일 채권 문제를 제기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고종은 최초에 15만엔 상당의 금괴 23개와 일본 지폐 18만엔을 예치하고, 다음에는 18500원과 5만원을 순서대로 예치했다고 알려졌다. 한국을 사랑한 미국인이었던 헐버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신문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스터 션샤인’ 고종의 예치금 증서 실체, 그 뒤에 숨겨진 헐버트의 노력 | 일요신문 (ilyo.co.kr)
‘미스터 션샤인’ 고종의 예치금 증서 실체, 그 뒤에 숨겨진 헐버트의 노력 | 일요신문
ilyo.co.kr
5. 애신이 다녔던 최초의 여학교 순성여학교
극중 애신이 다니던 여학교에서 여학생들은 미국인 여선생님에게 영어 알파벳부터 교육을 받는다. 이 당시 천주교와 기독교, 동학사상의 영향으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존재라는 의식이 점차 자리를 잡는다. 개화기 여성들은 근대적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 설립을 원했다. 이에 따라 1886년 미국 김리교 여선교부에서 온 메리 F. 스크랜턴이 한국 최초의 사립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설립하였으며, 여성이 남성과 같은 공간에서 공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성들만 따로 공부하였다. 결국 1898년 9월 9일자 독립신문에 한국 최초 여학교에 관한 기사 '여학교 설시 통문'(여권통문)이 실리게 되는데, "우리도 혁구종신(革舊從新)하야 타국과 같이 여학교를 설시하고 각각 여아들을 보내어 각항 재조와 규칙과 행세하는 도리를 배와 일후에 남녀가 일반 사람이 되게 하올 차 방장 여학교를 설시하오니···." 결국 1899년 조선 여성들만의 힘으로 설립된 최초의 여학교는 순성여학교이며 서울 승동에 위치하였다. 양반가 여인들이 주도한 여성단체 '찬양회'가 학교를 설립하였고 9살부터 15살까지 50명의 신입생을 모집했다. 그러나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결국 재정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2년 뒤 문을 닫았다. 이 학교는 여성들이 직접 설립한 최초의 민간인 설립 여학교로, 정부의 여성교육에 대한 무관심을 일깨우고 여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사회 전반에 인식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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